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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

“사명” 하니까 뭔가 되게 거창한데,

나는 엄청난 회피형이다.

 

갈등이나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사실, 

그냥 그 상황을 내 눈앞에서 치우고 다른곳을 보며 스스로를 단단하다고 착각하는 일이,

내 자신은 담대하고 문제 없는 ㅡ 마치 무슨 현자 마냥 온유한 ㅡ 삶을 산다며 자위하는 일이 파다하다.

 

 

최근에, 한 친구를 내 페르소나와 진짜 나 사이로 들인 일이 있었다.

애매하게 표현했지만, 어… “마음을 열었다” 정도면 대충 비슷한것 같아.

 

아니 , 그렇다고 이게 연애 문제는 아니구… 아니… 연애 문제인가…? 잘 모르겠다.

 

암튼 그게 주는 아니야.

 

요지는, 내가 고작 한 친구에게 마음을 열었다고

별것도 아닌거에 섭섭하고, 이 친구가 정말 잘 되었으면 좋겠고,

이 친구를 잃는다 생각하면 기분이 너무나도 나쁘고… 난리도 아니라는거다.

 

연애 관련 제외하고 내 감정을 이리도 생생하게 느낀게 얼마만인지. 아니, 사춘기 이후로 있긴 했나?

 

이 일이 있고서, 내가 정말 누구에게 마음을 제대로 연적이 정말 한번도 없었구나 싶었다.

 

왜냐하면 나는 사람을 잃는데 있어서 아무 생각이 없고 외부 자극들에 무던해서,

꽤나 최근까지의 기도제목이 “제가 무던하지 않게 해주세요”였을 정도였거든.

(정확히는 “안주하지 않게 해주세요” 였지만 그게 나의 무던함을 깨어달라는 기도제목이었지)

 

아마 이 친구랑 예상치 못하게 짧은 시간 동안 너무나 많은 시간을 함께하게 되어서,

그 시간 동안 너무 많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서,

그 이야기들에 숨어있는 아픔들이 나와 너무 비슷해서,

이렇게나 마음 가는 친구가 되어버린것 같긴 한데, 

 

결국 나는ㅡ

외부 자극에 무던할만큼 단단한 사람 이었던게 아니라

외부 자극들이 “진짜 나”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하도록

방어적으로, 회피적으로,

내가 만들어 놓은 페르소나의 껍데기 밑에 살고 있었던것 뿐이었다.

 

사실은 막상 피할 수 없는 일이 다가오면 형편없이 망가질텐데.

 

 

사명 이라 하심은 결국 그런게 아닐까?

이리도 회피하고 있었던 문제들을 똑바로 마주하는것.

나의 페르소나 껍데기 바깥에 있었던 존재들을 안으로 초대하는것.

내가 나아갈 길에 있는 문제들을 온전히 바라보고

그가 나아간 길을 닮아가는 것.

 

 

아직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내 무던함을 깨어주신 것처럼, 인도해주시겠지 뭐.

klu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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