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그 답이 나왔니?”
지난 6년간 미국에서 수학 과외 선생님으로 일하면서 가장 많이 사용한 질문이다.
이렇게 물어보면 학생들은 열심히 자기 생각을 설명하거나, 단순히 공식으로 풀었다고 하거나 (“원래 그렇게 푸는거잖아요!”), 아니면 그냥 찍었거나 모르겠다고 하거나 한다. 그중에도 내가 가장 놀랐던 반응이 있는데, 바로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틀렸죠..?” 라고 말할 때이다.
특히 처음 만난 학생들이 이런 근심어린 반응을 보이는데, 중고등학생들이 그런 식으로 자신의 실수를 전제하는게 참 마음이 아프다. 혹시 틀릴때마다 이런 말을 들어왔나 하는 생각도 들고, 아니면 그냥 막연하게 공식만 외워서 풀었나 하는 걱정도 된다. “어떻게” 라는 물음에 답을 하지 못한다는건 수학 개념을 배울 때 그 논리를 배우지 못했다는 반증이니까.
다행스럽게도, 나와의 수업에 익숙해지고 자신만의 논리를 설명하는데 조금 편해지면, 학생들은 점점 자연스럽게 수학적인
대화에 참여하기 시작하고, 문제를 풀때마다 종종 생각에 잠긴다. 이럴 때 내 역할은 개념적인 도구와 명확한 정의를 제시하고, “어떻게”라며 항상 묻고, 아이들이 어떤 사고를 하고 있는지 최대한 따라가며, 틀린 논리가 있다면 짚어주고 대화해 보는 것. 더 이상 선생님이 아니라 가이드 같은 느낌. 신기하게도 이렇게 스스로 답을 찾아가도록 지도만 해 주면, 학생들은 종종 정답에 다다르면서 수학에 흥미를 느끼고, 혹여나 답을 찾는데 실패하더라도, 제시된 아이디어들은 꽤나 가치있는 문제 풀이 방법으로 발전한다. 내가 통상적인 수학 교육보다는 학생 중심, 대화 중심의 수업을 지향하는 이유이다.
미국의 교육부도 비슷한 생각을 한 듯 하다. 10년 전, 미국의 대부분의 주들은 커먼 코어 (The Common Core State Standards) 라는 정책을 이행하여 학생들의 논리적인 사고와 유창한 수학적 토론, 그리고 대화 중심 수업을 강조했다. 지지자들은 학생들의 문제 해결 능력, 추상적, 수적 추론, 그리고 수학적 논의를 구성하는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하리라 기대했고, 실제로 미국 내의 많은 구시대적인 수학 수업들이 새로운, 혁신적인 토론 형식으로 바뀌었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그런 대화 중심의 수업이 학생들의 수업 참여도 뿐만 아니라, 수학 실력과 이해도를 높일수 있다고 하니, 참 좋은 정책이지 않은가.
하지만, 커먼 코어에 대해 배우면 배울수록 어딘가 석연찮은 기분이 들었다. 커먼 코어가 이렇게나 학생들의 수학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면, 왜 내가 만난 대부분의 학생들은 “어떻게” 라는 질문에 그토록 힘들어 했을까? 사실, 정말 커먼 코어가 효과적으로 수학 교육을 발전시켰는지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의 NAEP와 OECD의 PISA에 따르면, 미국 학생들의 수학 성취도는 미세하지만 감소하면 감소했지, 결코 향상되지 않았으니.
대체 왜 그럴까? 전문가들은 여러 의견을 제시한다. NAEP나 PISA 같은 표준화된 시험으로는 커먼 코어의 효과를 증명할수 없다는 주장도 있고, 학교와 선생님들이 커먼 코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커먼 코어 자체가 실패작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이랬든 저랬든, 커먼 코어가 지향하는 “수학의 유창성”이 어떤 이유에서든 미국 학생들의 수학 실력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 점은 자명하다.
미국의 커먼 코어 정책을 보다 보면 한국의 수학 교육 개정이 생각난다. 한국 학생들은 전 세계적으로 봐도 출중한 수학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높은 학구열과 경쟁 때문인지, 그만큼 수학을 두렵게 여기는 학생들이 많다. 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무려 46%의 중학생들과 60%의 고등학생들이 자신을 수포자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대한민국 교육부에서는 이런 사실을 인지하고, 몇 차례의 개정을 통해 중고등학교의 수학 단원을 줄여나가는 방법으로 수포자의 수를 줄이려 노력했지만, OECD PISA 결과에 따르면 2009년 개정 이후 학생들의 수학 성취도는 대폭 감소된 것으로 보인다 (2015년 교육 개정의 효과는 아직 결론짓기 어렵다). 왜 그럴까? 단순히 배우는 개념의 수를 줄이는 것보다 더 효과적으로 수포자의 수를 줄일 방법은 없을까?
교육학을 공부하다 보면 계속해서 비슷한 맥락의 질문들이 떠오른다 – 특히 수학 교육의 목적에 관한 질문들이. 수학을 배우는 의의는 무얼까. 학생들이 능숙하게 수학을 할수 있도록 하기 위해? 수학 불안을 줄이기 위해? 글쎄, 이런 질문들은 우리가 왜 “수학”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답변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럼?
수학 해석학자 카를 바이어슈트라스는 말했다, “시인이 아닌 수학자는 결코 완벽한 수학자가 될수 없다.” 혹시, 이게 수학 교육의 목적을 보여주지 않을까? 수학을 배우는 이유와 시, 문학을 배우는 이유는 같을지도 모른다: 세상을 창의적인 시각으로 탐구하는 것. 나는 모든 수학 교육 기관들이 이러한 요소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믿는다. 학생들이 어떤 진로를 선택하던지, 능숙하게 “어떻게” 라는 질문을 던지며 세상을 탐구할수 있도록.
하지만, 말이 쉽지, 좋은 커리큘럼이나 좋은 교육 정책을 세우는 것만으론 이 목적을 달성할수 없다. 사실, 한국이나 미국이나, 현재까지 이행된 교육 개정들은 꽤나 의미가 있다. 미국은 창의적인 수학에 대한 발판을 마련했고, 한국은 학생들의 수학 불안을 인지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그러나 결과는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다. 단순히 구시대적인 수학 교육을 버리거나 배우는 개념의 양을 줄여주는것만으론 학생들을 수학자 – 또는, 창의적인 세상의 탐구자 – 가 되도록 도와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당장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 내 머리속을 가득 채운다. 수학이나 어떤 학문을 공부할때 그러하듯, 대화와 토론으로 그런 생각들을 발전시켜 나가고 싶은 마음이다.
이 블로그가 이런 나의 정처없는 생각들과 질문들을 담는 장소가 되길 소망한다.∎
1 National Governors Association Center for Best Practices & Council of Chief State School Officers. (2010). Common Core State Standards for Mathematics. Washington, DC: Authors.
2 Boaler, J. (2015). What’s math got to do with it?: How teachers and parents can transform mathematics learning and inspire success (pp. 57-83). New York, NY: Penguin Books.
3 National Center for Education Statistics. (2013, 2015, 2017, 2019). National Assessment of Educational Progress: An overview of NAEP. Washington, D.C.: National Center for Education Statistics, Institute of Education Sciences, U.S. Dept. of Education. Retrieved 2020, from LINK
4 Organis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2009, 2012, 2015, 2018), Program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Reading, Mathematics and Science. Retrieved 17 December 2020, from LINK
5 Loveless, T. (2020, November 30). Common Core Has Not Worked. Retrieved 2020, from LINK
6 Park, H., & NoWorryEdu (2015, July 22). 수학교육과정 개정을 위한 학교 수학교육 관련 설문조사 결과보도 [Survey Report Regarding Mathematics Education for Mathematics Educational Reform]. Korea: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 [NoWorryEdu Policy Reform Research Facility]
7 Korean Ministry of Education. (2009, 2015). National Curriculum Information Center. Retrieved 2020, from LINK
8 Organis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2009, 2012, 2015, 2018), Program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Reading, Mathematics and Science. Retrieved 17 December 2020, from LINK